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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llation

Rhythmos 

Rha, Yoo Seul

리드머스 라이프

 

민병직(포항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흐른다. 멈춰있는 순간조차도, 만물의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흐름 속에 내맡겨진다. 바람이 그렇고 시와 음악의 운율이, 세월의 흐름이 그렇다. 이러한 변화는 생성의 흐름을 통한 방향성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머뭇거리면서 혹은 과거를 향해 되돌아보기조차 주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희랍의 옛 철학자 헬라클레이토스(Heraclitus)가 말한 것처럼, 판타 라이(panta rhei), 세상 만물은 유전하겠지만 문제는 그 유전(流轉)의 감각들, 구체적인 동학을 느끼고 아는 것이다. 변화의 미세한 감각의 흔들림과 미덕의 앎을 모르기 때문에 매순간이 기대되고, 설렐 것이다. 그래서 인지 라유슬 작가의 미세한 감각상의 떨림이 전하는 감각상의 작용들도 흥미롭지만, 작업 변화의 차이화 과정(differance)을 거쳐 생겨나는 존재론적인 무게감 때문에 더욱 시선이 머물게 된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고민했음 직한 이번 전시의 화두인 리드머스(rhythmos)의 느낌이 제법 묵직하게 다가온다.

 

 

 작가가 주목한, 리드머스는 흐름을 의미하는 동사 rhein을 어원으로 하는 희랍어 rhythmos에서 유래한 말이고, 오늘날의 ‘리듬’을 의미한다. 음악적인 것들을 작업의 주요 동학으로 작용하는 작가이기에 더욱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작업의 안과 밖, 그러니까 작업의 내적인 형식과 내용은 물론 작업 자체는 늘 변화에 놓여 있고, 변화를 위해 달라져 왔기 때문에 모두 적용 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어디 작업뿐일까. 작가 자신도 그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 내맡겨져 있을 터,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변화란 그저 달라지는 것일 뿐이지 어떤 방향을 굳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작은 차이가 때로는 큰 변화 못지않은 의미를 가질 수 있고 과거를 향한 소급과 성찰을 통해서도 달라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번 전시가 그렇다. 앞으로만이 아닌, 과거를 돌이켜 보기도 하고 머뭇거림을 통해 지금의 현재의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그간 작가는 중첩된 색들이 일으키는 시각적인 파장으로 화면에 음악적 리듬감과 시간성을 입혀내는 작업으로 주목받았다. 형태가 겹쳐지고 그렇게 점진적인 색의 변화에 의한 시각적 움직임과 리듬감, 파동을 통해 감각상의 공명을 작동시켜온 것인데 그 효과가 꽤나 눈길을 요할 만큼 독특한 감성적인 공감을 전달해 왔다. 그리고 그 꾸준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시각상의 스타일마저 구축해 왔다. 색과 형이 빚어낸 시각적 효과의 측면에서 추상 회화의 범주에서 작가의 작업을 논할 수 있지만, 새로운 시각상의 효과나 스타일로 변별성을 획득함은 요즘 시대의 회화적 감수성을 그대로 담고 있기에 동시대 회화의 다변화된 흐름 속에서 작가의 작업이 읽혀지기도 한다. 작업을 통해 작가의 내적 심상이나 심리적인 변화를 투영하고 가시화시키고 있다는 점, 특히 추상이 하나의 전통이나 문법이 아니라 우연하고 필요에 의해 선택된 화면상의 효과라는 점에서 이전의 추상의 흐름과는 분명 다르다. 또한 개념적인 역동성이나 자유로운 태도, 화면 속에서의 음악적인 리듬감과 공간감의 효과를 위해 추상이라는 (재변형된) 문법을 차용한다는 점에서 시대적인 맥락 속에서 위상 지워질 수 있다. 작가의 내적인 심리상의 변동을 담아내거나 시간의 흐름을 입혀 내는 화법(畵法)이 그렇고, 작업에서 시간과 운동, 공간감의 효과가 창출되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형태와 색감이 만들어내는 시각 효과가 안정적인데다 닿을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비가시적인 것들을 드러내려 한다는 면에서 오래된 회화의 그것과도 유사한 측면들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크게 눈에 띄는 점은 공간이 더 작업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가득 차 있으면서 비어있는 것들’, ‘또 다른 신화를 찾아서’ 등의 그림에서는 공간적인 효과로 인해 화면상에서의 입체감이 더 분명해지고 깊숙해진 느낌이다. 한옥을 연상케 하는 집, 창틀, 그림자 같은 잔상 이미지 등이 드리워지기 때문이다. 음악적인 리듬감이나 운동감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작업들이 평면성의 틀 안에 묶여 있었던 점에 비춰볼 때, 이는 상당히 눈길을 끄는 변화이다. 작가의 말처럼 다른 차원의 공간을 잇고 싶었던 것일까. 작가는 이렇게 종종 그림을 통해 세상을 둘러싼 삶의 단상들,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감정들이나 복잡하기만 한 사유의 속내들을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비가시적인 것들, 혹은 그림자 지워진 자신의 내밀한 삶을 가시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생의 긍정은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또 다르게 고민했던 화두인 ‘리가토legato’ 개념으로 이어진다. 리가토는 이어서 연주하기, 음과 음 사이를 이어서 연주하라는 악보기호를 의미한다. 다른 것들과의 연결접속을 통해 더 넓은 삶으로 확장해가는 것이리라. 다른 차원의 공간에 끼어듦으로서 부단히 그 접촉 부위를 넓혀가면서 낯선 새로움들과 만난다. 이러한 연결은 현재, 미래는 물론 과거도 예외가 아니기에, 과거를 현재에 연장시키는 연속적인 생으로 본다는 점에서 베르그송(Henri Bergson)의 지속 개념 또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작가 역시 종종 지나간 과거를 소급, 성찰하는 사유를 이어간다. 이 또한 리드머스일 것이다. 이렇게 지속된 기억은 생의 그것이거나 예술에서의 창조의 과정과 같다. 그렇게 작가는 분절된 시간의 흐름이 아닌 부단히 흘러가는 연속적인 시간, 지속의 시간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작가 역시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의 한 순간을 담아낸 것이 이미지라 본 베르그송처럼 그 매순간에 대한 충일된 의식을 담아 회화로 드러내려 했던 것이 아닐까. 그림에 공간이 들어온 것 역시 더 완숙해진 삶의 존재를 드러내는 변화의 한 징후로 보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리드미컬한 움직임도 어쩌면 그저 화려한 빛깔의 파장이 아닌 작가의 정신적 번민이 녹아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기에 화사한 색채감 속에서도 불안함이 느껴졌던 것이고, 밝고 따스해 보이는 색감 속에서도 어둡고 차가움이 공존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흘러가고 이어가리란 생에 대한 주문은 (여전히 이러한 고민들이 사라지지 않고는 있지만) 무언가 달라질 것만 같은 어떤 변화를 읽게 한다. 그렇게 초연해지고 여유 있어지는 것이리라. 여전히 가득차 있으면서 비워있는 것이라 말하지만, 그 비워있음은 없음으로서의 무가 아닌 존재함으로 가득 찬, 공간의 비워있음일 터이니, 작가의 그림 속에 드리워진 공간감은 분명 예전의 작가와 달라졌음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처럼 작가는 색을 통해서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넘어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세상사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사유들을 드러내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유의 전개는 모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명확하고 분명한 것들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작가의 작업은 다시 오래된 추상의 어떤 태도와 겹쳐진다. 존재하긴 하지만 닿을 수 없고 비가시적인 어떤 근원적인 것들을 부단히 가시화시키려는 그리기라는 행위의 차원에서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기억의 저 깊은 곳에서 아우성대는 감각을 중첩시키고, 부단히 이어지는 사유의 자락들을 겹치고 포개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추상회화는 지금 시대의 젊은 작가들의 감성의 화용론을 갖고 있되, 오래된 추상이 지향하려는 바의 어떤 방향과도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도달할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생의 근원을 향한 벡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완숙해진 삶에 대한 여유마저 엿보이니, 자유롭게 흘러가고 그렇게 마디마디 삶을 이어가면서,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저 흘러가는 세월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Rhythmos Life  

 

Min Byung Jic (Pohang Museum of Steel Art / Chief Curator)

 

 

Flowing. Even in a still moment, all things remain in the flow of endless change. Poetry, like the wind, like the rhythm of music, feels the passing of time. Such changes find a direction by riding the flow of creativity. They sometimes look back to their past. This is how we understand and feel the sensation and specific driving force of panta rhei, as Heraclitus, an ancient Greek philosopher, once said, meaning that everything flows. Without knowing the subtle trembling of senses or awareness of the virtues of changes, you would look forward and feel the nervous energy in your stomach for each and every moment of your life. Maybe that is why it is interesting to see how these subtle tremblings are at work in Rha Yoouseul’s art, as it transfers the fluttering of senses. Yet it is the ontological weight brought from the differentiation process of the art works that captures my gaze. And maybe it is why the topic of the exhibition, which clearly shows her agony over the sensation of ‘rhythmos’, feels so heavy.

 

Rhythmos, the word that is the focus of the artist’s attention, is derived from the Greek root rhein which refers to rhythm today. Considering that musical elements drive her art, it makes perfect sense. Within and outside the artwork - in other words, not only the form and contents of the artwork but also the art work itself - are always in transition, always changing. So we might say that this applies to all artwork, yet it is not only artwork that this applies to. The artist also must have let herself ride the flow of change. Come to think of it, change is a state that transfers from one to another, without necessarily exhibiting a sense of direction. A small difference can mean a tremendous change, and change can be made through reflection and retroaction on the past. This is evident in this exhibition because we can feel her attempt to determine where she is at the present time, not only by envisioning the future but also looking back to the past and lingering in the present.

 

The artist has enjoyed praise for the way her painting addresses rhythm and time through a visual wave of multilayered colors on her picture plane. Gradual changes of colors through the overlapping of forms created visual movement, rhythm, and a wave working together toward a sensory unison. This effect allowed the artist to present a remarkably unique sensibility that demands the viewer’s attention. She even managed to build a certain visual style despite continuous change. We can discuss her work as abstract painting in terms of its visual effect made by forms and colors, but we can also read her distinct achievement in the context of the diversity of our time, as her work conveys a painterly sensibility and the style of her contemporaries. Her art is different from the abstract tradition of the past. One crucial aspect is that she visualizes and reflects her mental images and psychological changes in her works, and the abstraction of her style is not chosen to follow tradition or its grammar but for visual effect. Also, the conceptual dynamic, flexible attitude, and appropriation of (re-transformed) grammar for the application of musical rhythm and spatial effect within the picture planes can allow us to place her art in timely context. It’s most clear when we see the ways in which she conveys her inner psychological change; she uses the grammar of accumulating the layers of timeflow, as she creates an effect of time, movement, and space. Her art also has resemblance to that of the abstract tradition as she not only confidently utilizes the visual effects of forms and colors but also pursues and explores the realm that is not visible.

 

What draws our attention in this exhibition is that she brought a spatial element into her work. From the works ‘Filled but Empted,’ and ‘Looking for Different Myths’ we can find more depth and vivid three dimensionality due to spatial expression. It is because it casts a shadow of afterimages of a house that reminds us of a Korean traditional style residence, with distinct window frames and other features. Considering that previous works were constrained within the flatness of a picture plane despite their musical rhythms and movement, this is quite a turn. Does she want to connect different dimensions, as she claims? The artist reveals fragmented images of lives that surround the world through her work and inner sense of complex ideas and paradoxical, ambivalent emotions. Not only that, she visualizes something invisible on the other side and her unspoken life hidden in shadow.

 

Acceptance of one’s life leads us to the second topic of the exhibition, namely ‘legato.’ Legato is a sign that refers to playing consecutively - playing two notes as if they are connected. By connecting herself to others, she must have wanted to expand her life. Cutting into the space in the other dimension and continuously increasing the size of the contact surface, she encounters a strange newness. Present, future and of course the past are not excluded from this connection. It reminds us of Henri Bergsong’s concept of duration that it presupposes the past as a continuity of life prolonged to the present. Also the artist often continues her thinking about retrospection and reflection on the past. This is another side of rhythmos. Prolonged memories like this can be that of life or the process of creating art. In doing so, the artist might have wanted to convey the continuity and consecutive passing of time instead of a fragmented flow of time. Then, wouldn’t it be the artist also wants to show full awareness of each and every moment of her paintings, just as Bergong saw an image as a captured moment from flowing time? For this reason, I would interpret her bringing of space into her picture plane as a sign of change that reveals her growing maturity.

 

The rhythmical movement that we find in her art might have been a manifestation of the artist’s anxiety, something beyond the simple spectrum of bright colors. We may conclude that is why we find the coexistence of anxiety within the vibrant colors, and darkness within warmth. However, the spell that binds the life to flow and would flow (though the agonies on this matter would not disappear) allows us to glimpse a change, a possibility that something different might happen. That is how she manages to remain aloof and composed. Some say it is empty while being full, but such emptiness would be the emptiness of space full with existence, not the nothingness of non-existence. The appearance of spaces in her painting must reflect the changed state of herself. As such, the artist was able to go beyond expressing her emotions with colors and articulate her thoughts on the diverse events of the world captured through her eyes. Then again, the unfolding of thoughts is not something clear or concrete. They are rather ambiguous. This brings us back to a certain overlapping attitude with other abstract artists. We can find the practice of abstract artists from her work in the way she can visualize a thing that exists but is unreachable, invisible and immaterial. As she admitted, her work comes from layering emotions dwelling deep inside memories and from overlapping the tips of thoughts. In that sense, her abstract painting encompasses the pragmatism that the younger generation possesses today, while she is also sharing the same direction that the old abstraction pursued. Her work has a vector directed to the origin of life that can never be met. We can even find confidence that comes from maturity, as if she lets her life flow and hardens it more and more while connecting pieces of life measure by measure. Just like the flows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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