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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nt image

Kang, Jung Hun
Yeleen Lee

latent image: 저 너머 세계의 통로

이윤정 (갤러리비케이 큐레이터)  

 

진정한 삶은 여기에 부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안에 있다. 이런 알리바이 속에서 형이상학은 생겨나고 유지된다.  

-레비나스, <전체성과 무한> 에서  

 

진정한 삶에 대한 의문은 우리에게 저 너머의 세계, 이 세계와 다른 곳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존재’ 하는 것을 통해 또 다른 현실에 다가가려고 한다. 상투적인 일상에서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경험들의 진부함은 다른 일상을 꿈꾸게 하며,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일상에 머물러 있다.   

 

기억, 현실, 그리고 비경계  

스치듯 바라본 일상은 바라봤던 기억 속의 이야기들이 흔적을 남기며, 조용하게 갇혀있던 일상의 찰나가 펼쳐진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일상과 풍경의 모습은 시시각각 다르다. 다양한 현상들이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시간’이 아닌 ‘시선’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상을 인식한다. 개념이 내재된 사물의 사유는 하나의 실존적 규정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의성을 가진 일상은 다양한 사유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누구나 보고, 경험하는 ‘일상’의 모습을 작품으로 함께 보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을 통해 내재되어 있는 일상의 모습을 포착한 작가의 다양한 내면의 이야기를 함께 사유하고 경험하며 소통한다. 작품에 대한 의미와 분석을 어떠한 담론과 개념으로 이해하기 보다 ‘본다’ 라는 일차적인 행위를 통해 느껴지는 감수성과 이해에 대해 논하며, 예술의 내러티브는 담론으로 해석하기 보다 보는 이의 규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시 제목인 는 잠상이라는 뜻을 가진 카메라 용어로 현상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이라는 뜻을 가진다. 감춰진 일상의 모습, 지각하지 못한 풍경들이 작품을 통해 보여진다. 그리고 우리는 문득 낯설어 보이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때론 데자뷰처럼 무의식에 처음 바라본 풍경이 익숙한 풍경으로 각인되기도 하고, 시선의 파편들을 재구성하며,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그들의 ‘시선’을 볼 수 있다. 전시는 일상에서 잠재적 실재, 존재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풍경, 존재하지 않을 듯 하지만 존재하는 풍경을 담아내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상의 풍경을 서정적인 시각으로 풀어내는 강정헌 작가와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고찰하는 이예린 작가가 참여한다.  

 

강정헌은 여행과 일상에서 본 풍경과 생각을 자신의 카메라 속에 담아 놓고, 후에 판화를 통해 그 풍경을 보여준다. 그는 동판화의 에퀴틴트(aqueatint) 기법을 사용하며 기억의 이미지를 그리고,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작가가 느낀 일상의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 동판화의 기법인 에퀴틴트는 판을 여러 차례 부식시켜 생긴 층의 음영과 질감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부식에 의해 생긴 여러 층의 깊이 차이는 부드러운 음영과 질감을 가능케 하여 수채화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초기 흑백으로만 표현되었던 그의 작업은 후에 채색까지 더해지며 자신의 시선을 완성시키고, 감상자의 서정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그의 작업 주제는 크게 일상의 모습이지만 그 속에서 작게 도시와 풍경으로 나뉜다. 어찌 보면 동일하면서도 다른 작가의 주제는 기억과 인식이라는 개념으로 다시 하나로 합쳐진다. 그의  작업은 단편적인 일상의 도시 풍경의 이면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일상에서 한발자국 떨어져 본 일상의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정면으로 마주보고 인식한 풍경은 현실과 비현실 그 어디쯤에 있는 듯 하다.   

 

그의 또 다른 작업인  시리즈는 여행을 다니면서 보았던 풍경들을 판화로 담고 있다. 여행 후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여행의 모습은 사진에만 남아 있다. 사진에 담긴 기억이 낯설어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긴다. 판화로 찍은 후 채색된 이미지는 빛 바랜 기억을 담고 있으며, 아날로그적 감성이 숨어있다. 작가는 자신의 시선과 기억이 교차시켜,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다. 일상의 재현은 작가의 솔직한 감성이 묻어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일상의 경험을 깨닫는 순간을 마련한다.   

 

 사진 연작으로 잘 알려진 이예린은 실제와 허구에 대해 반문한다. 작가는 비 온 후 길에 생긴 물웅덩이에 반사된 일상의 이미지를 통해 분리되어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 한다. 미쳐 지각하지 못한 세계가 시야 안으로 들어오면서 인식 너머의 새로운 세계에 대해 갈망한다. 실재하는 현실과 변화하는 현실 그리고 실재하는 비현실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그녀의 작업은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이다. 다가갈 수 없는 물에 비친 일상의 모습이 되려 지각하지 못하는 현실일 수 있다고 얘기하는 그녀의 작업은 영상, 설치 작품을 통해 끊임 없이 야기되며, 이는 회화작업으로도 이어진다.   

 

이번 전시에는 사진 작업과 함께 회화 작품도 선보이다. 실재하는 세계에 대한 작가의 주제는 회화 작품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 꽃병의 그림자방>, <한 의자의 그림자방>의 회화 작품은 사진에서 느끼지 못하였던 가상의 실재가 더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나아가 물질의 존재와 실재에 대해 이야기 한다.   

 

깔끔하게 프린트 되어 있는 사진 작업이 다가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막힌 문이라면, 리드미컬하고 자유로운 붓 터치의 회화 작업은 실재 세계에 다가가는 통로가 된다. 사진과 또 다른 느낌의 표현감성을 회화 작업 안으로 가져오며 작가의 세계는 한층 더 정립되어 보인다. 특히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 <한 푸른 하프시코드가 있는 그림자방>는 가상의 세계에 한발 더 다가간다. 이처럼 그녀의 작업은 지극히 현실에 있는 순간이 작품으로 옮겨져 비현실적인 모습으로 변화하며, 우리가 보지 못했던 일상의 단면들이 표현을 통해 새로운 사유를 시도한다.  

 

공존하는 풍경  

내가 보는 것, 다른 이가 보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또 다른 일상과 풍경이 존재한다. 잠재되어 있는 표면은 이미 실재하고 있는 것이며, 표현되었을 때 비로소 현실화 된다. 실재에 대한 가치판단이 작용되기 전에, 지표 없이 바라본 세상의 시선은 확장된다. 작가의 표현은 자유로워지고, 보는 이의 해석은 다양해 진다. 각자가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그 시각들이 작품을 통해 교차되는 순간 일상의 이미지 전환이 시작된다. 바깥세상이라는 현실은 일상적 경험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사유하고, 우리는 현실의 존재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실재에 대한 감수성 차원에서 저 너머의 세상을 갈망하며, 이 안의 세상과 소통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자연과 상호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일상에 대한 사유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관계들 속에 있기에 미쳐 인식하지 못한 일상의 또 다른 단면에 대한 사유는 우리의 시각과 관계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존재하는 사물의 내적인 표면을 읽어내어, 잠재적인 것의 실재성을 표현한 그들의 작품이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작가가 바라본 세상을 함께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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